오늘은 논리학에서 오류에 관한 마지막 포스팅이 될것입니다.
언어적오류를 설명한 것데요, 언어적 오류는
애매성과 문법적인 유비의 오류떄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애매성의 오류는 전제나 결론, 단어나 구, 문장해석 의미를
둘 이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발생하게 됩니다.
문법적 유비의 오류는 결랍이나 분해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구요
-일단 언어적 오류에는 애매어의 오류가 있습니다.
말그대로 하나 이상의 단어가 그 논증의 전제와 결론에서 두자지 이상의
상이한 의미로 쓰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예문을 보죠
A는 길을 가는 동안 시원한 음료수가 든 컵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집에서 가서, 씻기전에 고생좀 할것이다.
손에 붙어있는 컵을 떼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대략, 이러한 논증이죠 ㅎㅎ
-애매한 문장의 오류는 두가지 이상으로 해서할수 있는 전제를
잘못 해석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다음 예문을 보시죠
기숙사에서 어쩌다가 A방에 있던 여자 친구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A는 기숙사의 규정을 어긴 것이다.
우리 기숙사에서는 친구를 방에 들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다 아실거라 생각 되는데요
여자친구의 사진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A의 여자친구가 가져온 사진을 같이 보고 있는 것으로 잘못해석한 것입니다.
예문이 좀 이상하긴 하네요;;
그래도, 제 목적은 예문보다도
오류에 관한 설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결합의 오류는 부분이 가진 특성을 전체의 특성으로 잘못 파악하는 경우 발생하는 것이고
-분해의 오류는 전체의 속성을 부분의 속성으로 잘못 전이시킨 경우 발생합니다.
예로 들어,
한국 경제가 성장하였다. 서민들의 소득도 증가하였을 것이다.
이런식의 문장인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알고 있는 오류에 관한 모든것입니다.
솔직히 제가 지금까지 포스팅한걸 읽었다고 한들
논리력이 갑자기 확 증가한다거나 비판능력이 증가하지 않습니다.
저는 솔직히 논리력이나 논술능력의 향상을 위해 학원에 다닌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논리가 무엇인가요? 논술이 뭐죠? 수사학이라는것을 왜하는 것일까요?
자신의 논증을 상대방에게 알리기 위함이라고요?
그럼 그 전에 당신의 주장이라는게 있습니까?
그 주장이라는 걸 당신이 확실하게 알고 있는것 맞습니까?
혹시, 당신은 그 주장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그냥 단순하고, 그럴듯하게 생각한 것을 그냥 기억하고 있을 뿐이고
별다른 비판적인 과정도 거치지 않은채
알지도 못하고 기억만 된 지식을 바탕으로 주장만 하는 것이 아닙니까?
논리를 배운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논리는 기억됨으로써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주장에 대하여
아 저사람은 저런저런한 논리적인 오류를 가지고 있구나
저 사람의 주장에 비판이나 해볼까?
이런다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비판만 가지고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대안이 있어야 하죠.
현대 민주주의? 자본주의? 왜 우리가 현대 이렇게
불완전하고, 오류투성이인 이념들이나, 제도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현재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를 대체할
그 어떠한 이론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비판가들이 많아도 자본주의가 잘못된 것을 알아도
자본주의를 무너뜨릴수 없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사회주의와 같은 경우는 역사를 통하여 사람은 신뢰할수 없는 존재임이
증명되었고, 결과적으로 받아들일수 없는 개념입니다.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주장에 비판하고
자신의 개념을 주장하기 위하여는 창의성이라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창의성이라는게 무엇인가요?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요?
여기서는 홉스의 의견을 일부 따올수 밖에 없겠네요.
인간의 창의성은 경험에서 나옵니다.
그가 제시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은 어떠한 일의 처리에 있어서 과거의 기억에 의존을 많이 한다는것은
부정할수 없습니다.
인간이 새로운일 따위에 맞서게 된다면
인간에게는 어떠한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 길은 아주 많은데, 몇개는 실패하고 몇개는 성공합니다.
우리는 이 길중에서 성공하는 길을 창의성있는 생각이라고 합니다.
경험이 있다라고 하는 것은
실패할 확률, 즉 시행착오를 겪을 확률이 적다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은 경험한 자만이 가장 많은 미래를 예측할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의 경험은 단순히 일상의 경험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독서 또한 경험이 됩니다.
한사람의 훌륭한 일생의 철학과 경험이 담긴 책
시대를 가리지 않고 우리에게 미래를 알려주는 책
우리는 이러한 책을 명저라고 부릅니다.
명저를 통한 경험의 획득과 이를 유용하기 사용하기 위한
스스로의 비판의 과정이 훌륭하게 수행될수가 있다면
논리학원에 가지 않아도 개인의 논리능력이나, 창의력은 충분히 극대화 될수 있다고 봅니다.
이건.. 뭐 언제까지나 제 생각일 뿐입니다.
진리가 아니란 말이죠.
판단과 선택은 자유입니다.
저는 이리저리 개인의 판단과정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Informa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의 죽음에 대한 태도 (0) | 2010.08.27 |
---|---|
각 기관별 대사 (1) | 2010.08.27 |
논리학-가정의 오류 (0) | 2010.08.23 |
논리학-약한 귀납의 오류 (0) | 2010.08.21 |
논리학-유관성의 오류 (0) | 2010.08.21 |